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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이강철의 상상 “우리가 데이터 시대에 던졌다면” - 경향신문

‘국보’ 선동열 ·‘역대 최강 사이드암’ 이강철 대담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오른쪽)과 이강철 KT 감독이 지난 2월 부산 기장 현대차드림볼파크에서 진행된 KT 전지훈련에서 투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KT 위즈 제공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오른쪽)과 이강철 KT 감독이 지난 2월 부산 기장 현대차드림볼파크에서 진행된 KT 전지훈련에서 투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KT 위즈 제공

이강철 해태에 입단한 1989년 ‘방장’과 ‘방졸’로 맺은 ‘각별한 인연’
그 당시 해태, 투타 양면 최고의 팀…그런 팀 되려면 선수 양성 필수
소형준 같은 선수들이 선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줘야

어느새 33년째 인연이다. 손가락을 꼽아보던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58)과 이강철 KT 감독(55)은 서로 깜짝 놀랐다. ‘국보’ 선동열과 ‘역대 최강 사이드암’ 이강철은 과거 해태의 중흥기를 이끈 에이스였다. 이강철 감독이 해태에 입단한 1989년 ‘방장’과 ‘방졸’로 맺은 각별한 인연이 33년차를 맞는 올해는 KT 스프링캠프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부산 기장에서 치러진 KT 1차 스프링캠프에는 선동열 전 감독이 지난 2월23일까지 이강철 감독의 초청으로 함께했다. ‘국보 선동열’과 함께 한 일주일간 KT의 20대 젊은 투수들은 신선한 배움을 얻었다. 선동열 전 감독이 캠프를 떠나기 직전, 이강철 감독과 마주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 룸메이트였지만 이제는 서로를 ‘감독’으로 칭하는 두 레전드의 대화 속에 이 시대 젊은 투수들이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들이 아주 많았다.

■ 룸메이트 시절 기억은

이강철(이하 이) = 1989년 입단해서 7년간 계속 룸메이트였다. 감독님이 일본에 가면서 내가 30대에 비로소 방장이 됐다(웃음). 그 시절에는 사모님보다 내가 감독님을 더 많이 알았다. 심지어 감독님이 일본에서 귀국했을 때도 행방을 나만 알고 있었다. 돌아가신 감독님 아버님께서 “기자들이 찾는다. 동열이 좀 찾아달라”고 전화 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동열(이하 선) = 우정보다 애정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야말로 아내보다 많은 시간을 같이 있었다. 지금도 안타까운 기억이 하나 있는데 1992년 이 감독이 송진우(당시 빙그레)와 다승왕을 다퉜다. 마지막 빙그레 2연전이 남아 최종전에 붙는다고 했는데 송진우가 먼저 나와 승리하고 이 감독은 마지막 날 완투하다 역전패를 당했다. 내가 마무리였는데 건초염 때문에 던지지를 못했다.

이 = 둘 다 18승이었는데, 2연전 첫날 한희민 선배가 4회까지 던지고 5회에 송진우 코치가 나와 이겼다. 다음날 나가서 1점 차 앞서 있었는데 8회에 코치님이 묻더라. 마무리는 없고 (조)계현이 형이 던진다고 하는데 혹시 지게 되면 평생 후회 안겨드릴 것 같아 내가 던진다고 했다. 홈런을 맞고 졌다.

선 = 내가 몸 상태가 좋아서 막아줬으면 이 감독이 타이틀홀더 한 번 했을 텐데 그때 못 나간 것이 두고두고 안타깝고 미안했다.

이 = 그래서 광주 도착해서 한잔 사 주셨다. 그 전에 선 감독님이 챙겨준 승리가 굉장히 많았다. 그해 계속 “타이틀 따라가지 말고 순리대로 가라”고 조언해주셨는데 나는 급하니까 계속 되는 대로 나갔다가 졌던 기억이 난다. 지금 우리 팀도 어린 투수들이 많다. 감독님 같은 대투수의 조언과 대화를 경험하면 큰 힘이 생길 것 같아 부탁드렸다. 선수들 반응도 좋았다.

■ ‘에이스가 없다’는 데 대한 평가는

선 = 국제대항전에서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처럼 한 경기를 잡을 만한 선발 투수가 현재 없는 것은 사실이다. 올림픽을 준비해야 하는 대표팀 김경문 감독도 굉장히 고민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번 캠프를 보면서 앞으로 몇 년 사이 좋은 투수들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본 몇몇 투수들이 기본기부터 아주 잘 돼 있는 모습을 봤다. 에이스가 당장은 없더라도 곧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 = 같은 생각이다. 리그에서 외국인 투수들이 워낙 세니 중간급 투수는 많은데 에이스급이 나오지 않는다. 잠깐 끊긴 시기가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좋은 신인들이 많이 들어온 것 같다. 우리 팀 소형준도 있다. 잠시 정체기를 겪더라도 이 선수들이 확실한 1~3선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줘야 에이스가 나온다.

■ 해태 같은 강팀, 또 나올까

선 =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지역연고제라 그런 선수들이 한 팀에 모일 수 있었고 지금은 드래프트로 뽑으니 10개 팀이 평준화돼서 그런 선수 구성 자체가 어렵다. 물론 두산이 계속 잘했지만 과거 해태처럼 압도적으로 연속 우승할 수 있는 팀은 없으리라 본다. 당시 해태에는 10승 투수가 5명 있었다. 모두 해태를 공격의 팀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역전하면 그 점수를 지킬 줄도 아는 투수력의 팀이었다.

이 = 투수들이 막아주니 타자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그 기를 받아서인지 지난해 우리도 10승 투수가 4명이나 나와 정규시즌 2위까지 할 수 있었다. 그때는 투수들끼리 끈끈한 정이 많았다. 다른 팀에 지기 싫은 욕심도 있었지만, 누군가 잘 던지고 있으면 서로 막아주려 하고, 선발 등판 다음날 또 1이닝 던지고 할 때였지만 내 어깨 아끼기보다 “들어와. 내가 던져줄게” 하는 정이 있는 시대였다. 지금은 FA도 있고, 보직이 다 분업화돼 있어 그런 점에서라도 해태 같은 팀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 그 시절 데이터 분석이 있었다면

선 = 1년간 이론 공부를 하다보니 현역 시절 지금처럼 데이터 측정장비가 있었다면 우리 데이터는 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정말 궁금해졌다. 특히 수직 무브먼트와 회전수가 궁금하다. 그때는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크다 정도로 표현했지만 결국 타자 앞 터널포인트가 짧았다는 뜻인데 그 개념으로 가면 과연 내가 어느 정도였을지 궁금하다.

이 = 평균 스피드는 지금에 비해 과거 투수들이 분명 훨씬 느리다. 하지만 피치터널과 수직 무브먼트는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제구가 좋았으니까. 그러면 회전수와 피치터널, 디셉션은 그때 투수들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게 궁금했다.

선 = 그런데 꼭 하고 싶은 얘기는 현대 야구에서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 바탕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경기 운영에 있어서는 감독의 직관과 경험이 데이터에 더해져야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다. 선수 각자의 당일 컨디션 등 복합적으로 고려할 것이 매우 많다. 메이저리그식이 아닌 우리 체형과 스타일에 맞는 데이터를 잘 선별해 활용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이 = 데이터 야구시대의 장점이 분명 있지만 현장에서는 단점도 느낀다. 방금 던지고 내려와서도 코치가 ‘뭐 던졌냐’고 물으면 대답 못하는 투수가 많다. 과거 투수들은 전체 구단 타자들의 강·약점을 알고 던졌다. 경기 뒤 같이 밥 먹으며 복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각인이 됐다. 지금은 데이터에 의존하니 타자를 모르는 투수들이 많다. 선발이 스스로 알고 던져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 1차 캠프를 마치며

선 =내게도 이번 캠프는 젊은 선수들의 생각과 꿈을 들어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지난해 KT가 플레이오프에 가면서 선수들이 많은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까 황재균과도 이야기 나눠보니 “이제 어느 팀과 붙어도 해볼 만하다”고 하더라. 그런 자신감을 갖고 올 한 해 부상 없이만 가면 또 좋은 성적을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상 없는 한 해 되길 기원하겠다.

이 = 젊은 투수들에게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감독님에게도 다시 한 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도록 항상 기원하고 있다. 이번 캠프 수고에 정말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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