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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 암이 빼앗아간 세상, 셔틀콕이 돌려줬어요 - 한겨레

☆별별스타☆ 장애인배드민턴 국가대표 정겨울 선수 인터뷰
6학년때 “가슴밑 마비” 청천벽력
응급수술로도 다리 신경 못살려
처음엔 싫던 라켓 이젠 소통 창구
“운전 배우고 패럴림픽 나가고파”
장애인배드민턴 국가대표 정겨울 선수.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애인배드민턴 국가대표 정겨울 선수.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날, 주위 사람들은 “운이 좋다”고 했다. 치료되는 암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3살 서윤이’는 생각했다. ‘나는 하나도 안 좋은데 왜 다들 (운이) 좋다고 말하지. 그리고, 왜 나일까.’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때 다리를 절뚝일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척추측만증 때문인가 싶어 4개월 교정 치료도 받았다. 그러나 정밀 검사 뒤 나온 진단명은 희소 질환인 척수종양. 첫 진료 때는 “치료 방법이 없다. 가슴 아래 전부 마비가 올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수소문 끝에 찾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고 완전 마비가 되는 상황은 막았다. 그래도 두 다리 신경은 살리지 못했다. 그 이후, 아이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항암 치료를 받고 국립재활원에서 재활할 즈음 ‘서윤이’는 ‘겨울이’가 됐다. 정겨울. 2003년 11월, 첫눈 올 때 태어나 아버지 정순영씨가 아이에게 주고자 했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출생 신고를 ‘정서윤’으로 해버렸다. 집안에서는 ‘겨울이’로도 불렸던 터라 낯선 이름은 아니다. 정겨울은 “그냥 한글 이름으로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장애인배드민턴 국가대표 정겨울 선수(오른쪽)와 아버지 정순영 씨.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애인배드민턴 국가대표 정겨울 선수(오른쪽)와 아버지 정순영 씨.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18살 겨울이’는 지금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에서 배드민턴 라켓을 휘두르고 있다. 배드민턴을 처음 권유받았을 때는 “싫다”고만 했었다. 사춘기 무렵 바뀐 몸 상태에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외출조차 꺼렸던 때였다. “마트나 어디를 가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사람 많은 곳은 계속 피해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홀로 딸을 키운 아버지는 “어차피 재활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딸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정겨울에게 배드민턴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다. 국가대표 첫 합숙 훈련 때 선배 김효정이 해준 말에 나름 용기도 얻었다.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라”는 김효정과 함께 쇼핑몰도 갔다. 그 이전에는 집에서 혼자 유튜브 영상 등을 시청하면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는 했었다. 내년에는 운전면허시험도 도전할 생각이다. 집에서 독학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일찌감치 통과했는데 대학에 진학해서 운동 관련 학문도 배우고 싶다. 정순영 씨는 “딸이 운동하면서 운동선수의 길이 보이고 그러다 보니 생각도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정씨는 딸의 운동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현재 유튜브 채널 〈겨울아빠〉를 운영 중이다.
장애인배드민턴 정겨울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 아버지 정순영 씨 제공
장애인배드민턴 정겨울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 아버지 정순영 씨 제공
장애인배드민턴은 배드민턴 자체 능력뿐만 아니라 휠체어 제어 기술까지 필요해 꽤 힘든 종목이다. 그래도 정겨울은 “셔틀콕이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다”고 말한다. 지난 6월 말 열린 경기도지사배 겸 전국장애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 때는 여자단식 1위에 올랐는데, 처음으로 떨지 않고 경기를 치렀다. 이전에는 강적을 만나면 바들바들 손부터 떨었던 그였다. 정겨울은 “체력훈련을 더 열심히 해서 코트에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싶다”고 했다. 배드민턴에 진심이 되자 모든 경기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중학생 배드민턴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라켓소년단〉(SBS)을 안 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폼도 어색하고 치는 자세와 셔틀콕이 날아가는 방향이 다르다. 드라마를 보면서 점점 진지해져서 더이상 안 본다”는 게 진짜 ‘라켓소녀’의 말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봤던 별이 너무 예뻐서 지금도 별이나 행성 등의 영상을 즐겨보는 정겨울. 2024 파리패럴림픽 배드민턴 코트를 머릿속에 그리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너는 지금도 나름 잘하고 있고 앞으로 더 잘 될 거야.” 뜻밖에 찾아온 희소병으로 한없이 좁아졌던 정겨울의 세계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배드민턴 라켓을 꽉 움켜쥐고. 이천/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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